나는 왜 쓰지 않는가
글을 쓴지가 참 오래 되었다.
사실 매일 글쓰는 것을 상상한다.
무엇을 쓸지, 어떻게 쓸지를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시간이 나면 글을 써봐야지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왜 나는 글을 쓰지 않는 걸까?
내가 글을 쓰지 않는 이유를 글로 써 보았다.
1. AI의 발달(1) - 정답을 알려주는 GPT
교과서에나 등장할법한 거대하고도 막연한 주장이지만,
AI의 발달은 글쓰기를 주저하게 만드는 주요 요인 중 하나이다.
보통, 쓰는 것보다 읽는 것의 비중이 더 클 것이다.
특히 정보를 찾을 때는 더욱 그렇다.
ChatGPT가 이렇게까지 득세하기 전,
나는 구글링을 통해 뉴스나 블로그에 정리된 자료를 토대로
레퍼런스를 마련하고 궁금증을 해소해왔다.
전문가의 논리정연한 설명과, 일반인의 경험을 섞어서 내 나름의 정보를 마련해왔던 것이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 즉시 GPT 앱을 실행 시키고, 내가 궁금한 것을 물어본다.
단순히 물어보는 것을 넘어, 답변에 대한 레퍼런스를 요청하고
구체적으로 나의 상황을 설명해서 적절한 "정답"을 찾아낸다.
정보 소비자의 입장에서, 구글링을 통한 정보 탐색의 비중이 매우 낮아졌다.
내가 찾는 내용일지 아닐지, 그리고 그게 옳은지 아닌지에 소비하는 시간이 아까워졌다.
한번 "딸깍" 물어보고 몇 초만 기다리면 내게 필요한 완벽한 정답이 제시된다.
나 조차 블로그를 더이상 들어가지 않는데,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인 건 아닐까? 하는 생각.
그래서 글을 쓰는 것에 대해 회의감이 들기도 했고, 무력감이 들기도 했다.
2. AI의 발달(2) - 첨삭을 넘어서 창작을 해주는 GPT
회사에서 보고서를 쓸 때, GPT를 자주 이용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해외 법인 대상으로 발송하는 영문 이메일 작성을 요청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대충 주제와 분위기 정도만 알려주고 메일을 써달라고 했는데
내가 원하는 바가 명확하게, 유려하게 쓰여져 있어서 놀랐다.
그 후로, 각종 자료를 정리하거나 보고서를 쓸 때 내 생각 1g을 GPT에게 전달한다.
그러면 GPT는 한 상 푸짐한 10첩 반상을 차려온다. 그 중에서 내가 먹고 싶은 것만 골라 먹으면 된다.
단 1년 전만해도, 보고서의 Executive Summary는 물론,
단 한줄의 헤드 메세지를 쓰는 것조차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해서
일목요연하게 내 생각을 제시하고자 노력 했다.
최근에는 그런 노력이 많이 부족해졌다. 아니 거의 안하는 편인 것 같다.
머리를 쥐어 짜는 대신, GPT에게 비슷한 문장을 계속 만들어내도록 시키고 거기서 괜찮아보이는 것을 취한다.
성과를 만들어내는 속도는 빨라졌지만, 내가 무엇을 기획하고 보고했는지도 가물가물할 때가 있다.
생각하고 또 글을 쓰는 "근육"을 잃어버리는 것 같다.
내 생각을 정리하는 블로그에서만은 절대로 GPT의 첨삭이나 창작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결심 때문일까,
사실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도 몇 번이나 시도를 했지만
잘 쓰여지지 않아서 저장만 해놓은 글이 꽤 된다.
3. 완벽하게 써야 한다는 부담감
글쓰기로 벌어먹고 사는 것도 아니고, 누가 읽고 평가를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나의 일상과 생각을 기록하는 곳일 뿐인데 뭔가 "틀려선 안된다" 라는 강박 관념이 있다.
맞춤법은 기본이고, 중언부언 하지 않기, 주절거리지 않기, 누군가에게 "인사이트"를 주기 등
내가 세워놓은 높디 높은 기준 때문에 나는 스스로에게 엄격한 자기 검열을 실시한다.
차라리 안쓰고 말지, 하는 생각이 머리속과 마음속을 지배한다.
위에서 쓴 GPT의 침략도 한 몫을 한다.
완벽한 GPT와 불완전한 나의 대결이랄까,
주눅이 들어서 차마 키보드를 두드릴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속에서는 무언가 써내려가길 바란다.
아무도 읽지 않고, 아무에게도 쓸모 없는 글이 되더라도
어딘가에 내 생각들을 남겨놓길 바라는 마음이 내 머리 속 한 켠을 차지한다.
아내와 아기와 시간을 보내고, 회사에서 일을 열심히 하고 돌아와,
달리기까지 하고, 책도 읽고, 집 정리도 하고.
완벽한 하루를 보냈다고 생각해도 될만한 상황에서도
내 마음 한 구석에서는 "오늘도 글을 쓰지 않았다"는 생각이 죄책감을 불러 일으킨다.
남을 위해 쓰는 글 말고, 그냥 나를 위해 글을 써보려고 한다.
또각또각 두드리는 키보드가 토탁토닥 나를 위로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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