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내에게 중요한 약속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기와 저, 단 둘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간 아내가 운동을 가거나 병원을 갈 때 마다 혼자 아기를 봐야 했기에
어느 정도 혼자 육아가 단련(?)이 되어 있었지만,
그런 상황은 길어야 2~3시간 이었기에 이번처럼 긴 시간은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육아 휴직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라
아기와 최대한 같이 있는 시간을 많이 가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걱정보다는 기대 되는 마음을 더 가지고 오늘 하루를 시작 했습니다.
수유 텀은 4시간에 한번씩이고 수면 텀은 2시간 30분마다 한번씩 입니다.
즉, 약 1시간 30분은 아기가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는 시간이기 때문에 열심히 놀아주어야 합니다.
아내가 출발한 후, 아기가 조금 찡얼거리기 시작합니다. 밥 먹을 시간이 다가와서 그렇습니다.
수유텀을 맞추기 위해 놀이로 정신을 쏙 빼놓아야 합니다.
먼저, 우리 아기의 최애 동요 5곡이 들어 있는
"신나는 영어 동요" 사운드북을 같이 듣고 보았습니다.
엎드려 있는 아기에게 틀어주면,
신이 난 듯이 발을 까딱거리기도 하고 고개를 살짝 흔들기도 합니다.
지루해서 소리를 까악까악 지르다가도 이것만 틀면 조용하게 듣고
그림을 보고 있다가, 노래가 끝나자마자 다시 틀어달라는 것처럼 저를 보고 소리를 지를 때도 있습니다.
한번 틀면 한 곡당 최소 3번은 틀어주고 옆에서 노래를 따라 불러주어야 만족하는 것 같습니다.
동요가 조금 지루해질 때가 되면, 빨갛고 커다란 사과가 그려진 이 책을 보여줍니다.
아기가 빨간, 파란색 등 선명한 색이 있는걸 좋아하다보니 이 책도 참 좋아합니다.
책 속에는 다양한 동물들이 저마다의 소리를 내며 사과를 먹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기가 몰입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동물들의 소리를 내줍니다.
사각, 사각, 아사삭, 아사삭, 우적, 우적, 쪽쪽 등등의 먹는 소리를 내주고
동물들 그림마다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려서 시선을 집중 시킵니다.
사운드북 보다는 집중력이 떨어지지만 그래도 즐겁게 보는 편입니다.
불빛이 나오는 크리스마스 책도 있지만, 오늘은 그게 땡기지 않는가보더라구요.
소리나는 곰돌이 인형도 오늘은 패스 했습니다.
특히 재밌고 귀엽고 감동적이었던 것은,
제가 아기 볼에 뽀뽀를 할 때마다 꺄르륵 하고 웃는 모습을 볼 때 였습니다.
사실.. 요즘 면도를 자주 안하다보니 얼굴에 수염이 까슬하게 나 있는 상태라
부드러운 아기의 뺨에 닿으면 간질간질한가봅니다.
아빠의 뽀뽀가 좋아서 웃었다기보단, 아마도 간지러워서 웃었겠지만
그래도 제가 뽀뽀를 할 때마다 싫어하지 않고 즐겁게 웃는 모습이 참 귀엽고 좋았습니다.
수유를 하고 나서 트림을 시키고, 두 번째 낮잠을 잘 시간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 낮잠은 아기가 가장 길게 자는 시간입니다.
요즘은 보통 2시간 정도 자는 편인데, 첫 30분이 지나서 깰랑 말랑할 때 미리 들어가서
수면 연장을 해주어야 아기가 길게 잠들 수 있습니다.
수면 연장을 할 때가 되어, 아기 방에 들어갔습니다.
역시나 잠에서 깨어 꼬물거리고 있는 아기 옆에 누웠습니다.
요즘 우리 아기는 옆으로 누워서 자는 것을 좋아해서,
제 옆구리에 아기를 옆으로 눞혀서 붙여 두었습니다.
한 손으로는 아기의 등을 만지고 쓰다듬고 토닥토닥해주니
이번에는 생각보다 찡얼거리지 않고 금방 잠들었습니다.
아기가 낮잠을 자는 공간은 우리 집에서도 특실과 같은 공간으로,
온도와 습도와 공기청정이 완비된 곳이며, 암막커튼도 쳐져있어서 잠자기에 너무 좋은 공간입니다.
저도 모르게 옆에서 잠이 들어서, 아기와 같이 잠들었다가 일어나보니
아기의 총 수면시간이 2시간 30분이나 지났군요...
베이비타임을 확인한 아내가 '어떻게 이렇게 오래 낮잠을 잤어?'라고 하며 놀랐습니다.
아기와 저 둘 다 몽롱하고도 개운하게 잘 잔 것 같습니다.
그 후에도 위와 같은 방식의 반복이었습니다.
분유를 타서 먹이고, 아기를 안아주고 트림시켜주고 놀아주고
부모님과 영상통화를 하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몸이 크게 힘들진 않았지만, 하루를 온전히 아기에게 쓰다보니
집 청소나 개인적인 활동들을 잘 못하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저야 딱 하루 이런 경험을 하는 것이지만 제가 육아휴직이 끝나고 회사로 복귀하면
아내는 매일 혼자 해야 하는 일상이라고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18시쯤 되어 아내가 집으로 왔습니다.
아기는 엄마를 보고 반가워했고, 곧 또 씻을 시간이 되어 얼른 아기를 씻기고
수건으로 닦아주고, 로션을 꼼꼼히 발라 주었습니다.
보통 마지막 수유는 제가 하는 편인데, 오늘 아기를 거의 못 본 아내가 막수를 하기로 했습니다.
낮에 너무 신나게 논 탓인지, 아기는 수유를 하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제가 회사에 가게 되면 마주할 장면이었습니다.
최대한 빨리 돌아온다고 해도 겨우 18시쯤 될텐데
그러면 아기 얼굴을 조금 보다가 씻기고, 수유를 하고나서 아기는 잠에 들겠네요.
일주일 중에 5일이나 그런 시간을 보내면 과연 아기는 저를 기억할 수 있을까요?
회사 일이 힘든 것 보다도, 아기와 겨우 쌓아둔 추억이 잊혀지지 않을까 싶어서 슬픈 마음이 듭니다.
회사 다니는 아빠들은 다들 이렇게 살겠지, 라는 생각으로 위안을 해보려고 해도
다들 그렇게 산다고 해서 그게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씁쓸해집니다.
그런 생각으로 인해서 씁쓸하고 슬픈 마음이 들더라도
우울한 감정으로 아직 남은 시간들을 허망하게 보내지 않도록
아기와 함께하는 하루 하루를 좀 더 소중히 보내도록 노력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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