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 도구&도서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편성준 지음)”를 읽고

시월십일 2024. 5. 7. 02:04

‘아 맞다, 책 놔두고 왔다.’ 오늘 아내와의 태교 여행을 떠나는 차 안에서 외쳤던 나의 한 마디다. 두고 온 책 외에 내가 챙겨온 것은, 게임기와 아이패드, 알러지 약, 물과 간식이다.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것들과 나를 즐겁게 하는 무언가의 것들은 모조리 챙겨왔다. 아내가 붙여준 “바리바리 바리스타”라는 별명처럼 바리바리 무언가를 싸들고 다니는 내가 “책”을 두고 왔다는 것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은 내게 필수적인 것도 아니고 즐거운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책을 어렵게 생각한다. 친근하게 읽고 가볍게 두는 무언가가 아니라, 꼭 거기서 유의미한 것을 읽고 쓰고 배워야 하는 무언가로 생각한다. 그래서 매번 정치, 경제, 역사, 글쓰기, 자기계발 등 재미없는 주제만 골랐다. 이번에 놓고 온 책 역시 '경제 위기가 닥쳤을 때 어떻게 그것을 파악하고 대처할 것인가'를 다루는 재미 없고 어려운 책이었다.
 
1시간 30여 분의 빗길을 달려서 도착한 숙소는 충청도에 위치한 “서유숙“이라는 곳이다. 사장님 성함인가?했지만 느리게 흐르는 숙소 라는 뜻인 것 같다. 아닐수도 있다. 숙소의 이름과 위치와 분위기와 냄새와 환경 모든것이 마음에 들었지만 지금 이 글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기 때문에 흐릿하게 넘겨본다.
 
깔끔한 탁자 위에, 책이 한 권 있었다.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 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이게 뭐야 하는 반발심이 먼저 들었고, 우리 부부도 지금 같이 놀러 왔고, 곧 아이가 태어난 후 둘 다 육아휴직을 쓰니까 우리도 놀텐데(?)라는 친밀감이 이어서 다가왔다. 바로 펼쳐보진 않았다. 아내와의 시간이 소중했기 때문이다. 충주 시내 구경을 마치고 돌아오는 빗길에 그 책이 생각났다. 쉬고 있는 아내 옆에서 책을 펼쳐 읽었다. 아내는 내가 가지고 온 게임기로 처제와 온라인에서 만나 게임을 했고, 씻었고, 누워서 나랑 떠들었다. 그 동안 나는 그 책을 붙들고 있었고 마침내 끝까지 다 읽었다. 그 동안 나는 집에서 책 대신 들고 온 게임기도, 물도, 간식도 생각나지 않았다. 간만에 흥미로움과 필요를 모두 충족하는 책을 만났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몇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글을 참 잘 쓰는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작가님은 카피라이터 답게 군더더기 없이 글을 썼다. 이상한 표현이지만, 모든 움직이는 목표물을 날카롭고 재빠른 표창을 던져서 맞추는 닌자 같았다. 최근 휴대폰 중독으로 약해진 내 집중력이 흐려질만하면 재밌고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내용들이 명확하게 내 뇌리에 꽂혔다. 내용도 좋았지만, 나는 글쓰기에 대해서도 생각을 했다. 글을 쓸 때면 생각이 많아진다. 내 생각이 100% 독자에게 왜곡없이 전달되기를 바란다. 그런 능력이 부족하다보니 이런 저런 사족을 붙이고 덧댄다. 그럴수록 말이 흐려진다. 안개가 흩뿌려진다. 독자는 처음엔 안개 속을 기꺼이 내딛을 의향을 보이다가, 금세 흥미를 잃게 된다. 이 책은 끝까지 작가가 생각하는 바를 읽게끔 만들고, 명확하게 내용을 전달한다.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알겠고, 또 그것들이 내 마음속에 남아서 나를 움직이도록 만든다. 이렇게 늦은 밤에 글을 쓰도록 만드는 것이 그 증거다. 
 
둘째는, ‘나는 아직 놀 때가 아니다’라는 생각이다. 작가님의 삶은 즐거워보인다. 물론 힘들고 어려운 순간들에 대한 내용도 자세히 표현되었지만, 책 내용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현재 본인의 삶에 만족하는 것으로 보인다. 직장을 그만두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즐겁게 살 수 있다고? 나도 한번 그만둬 봐?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하지만, 내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한 문장으로 표현되었지만 가장 중요한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20년 넘게 카피라이터로 일했지만“이라는 부분이다.
 

20년 넘게 카피라이터로 일했지만

 
 
그는 ”훼스탈“, ”커피에 반하다“ 광고 카피 등 전국민의 기억에 남는 콘텐츠를 만들어 낸 한 분야의 대가였다. 그에게 있어 ”퇴사“와 ”노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단순한 일탈이 아니었다. 이 책을 완독한 후에야 어렴풋이 느껴진다. 이 책은 20여년 동안 갈고 닦아온 것을 이제 자유롭게 휘두르는 시간에 대해서 쓰여졌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나는 아직 ‘퇴사’나 ‘노는 것’을 생각할 시기가 아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을 통해서 좀 더 나를 갈고 닦는 시간이어야 한다. 그래야 내 일을 할 수 있고, 제대로 놀 수 있을 것 같다. 다행히 나는 지금 내가 회사에서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하고 또 의미있게 생각한다. 나중에 그것들이 나의 무기가 되어 자유롭게 휘두르고 목표물을 성공적으로 쟁취할 수 있게끔 하려면 회사 생활을 열심히 해야겠구나(?)하는 다소 이상한 결론을 마주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는, 진짜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였다. 마침 나의 소중한 사람 중에도 진짜 삶을 살기 위해서 퇴사할 결심을 세운 분이 있다. 어떻게 그런 결심을 세우게 되었는지 그 시간과 과정과 감정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섣불리 응원한다는 말을 전하기가 두려웠다. 나의 말솜씨나 글솜씨가 부족해서, 내 진심이 가벼운 작별 인사처럼 여겨지는 것은 너무도 싫었기 때문이다. 마침 이 책의 말미에는 그 분이 갖추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정확하게 묘사된 내용이 있었다.  빈 메모장에 아래 문장을 먼저 써놓고 보니, 내가 할 말들이 하나씩 자연스럽게 써지기 시작했다. 며칠 더 다듬어야겠지만, 내 진심어린 응원을 전하기에 매우 적절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래 그 인용문을 소개하면서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진짜 삶을 산다는 것은 매일 새롭게 태어날 준비를 하는 것이다. 태어날 준비는 용기와 믿음을 필요로 한다. 안전을 포기할 용기, 타인과 달라지겠다는 용기, 고립을 참고 견디겠다는 용기다.“

에히리 프롬_"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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