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육아

개인주의자이자 대문자T인, 나의 부성애

시월십일 2024. 11. 9. 21:49

MBTI를 맹신하진 않지만, 그 중에서 T와 F에 대한 정의는 꽤 좋아하는 편입니다.

블로그 내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현실에서의 저는 대문자 T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고, 원칙과 규범을 중요시 하고, 무엇이든 논리적/분석적으로 대하는 편이라

회사에서는 "순사" 같다는... 별명까지 붙여진 적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별명에 대해서 나쁘게 생각하진 않습니다 ㅎㅎ)

 

 

그러한 저 였기에, 아이를 낳기 전에 스스로 걱정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나도 부성애라는 감정을 가질 수 있을까?

 

 

제목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저는 내향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성격도 강한 편입니다.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친밀하고 사교적인 상황보다는,

혼자 자기계발을 하거나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더욱 선호하는 편의 인간이었습니다.

사실 지금도 그런 편입니다. (갑작스레 약속이 취소되면 기분이 편안해지는)

 

아기를 낳기 전, 앞으로 나의 개인 시간은 정말 많이 줄어들겠구나에 대해서 미리 마음의 준비를 했습니다.

그래서 아기를 낳고 나면 나의 것을 "희생" 해야겠다. 라는 다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기분이 내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는 마인드였죠.

 

이러한 T적인 생각은, 아이가 세상에 처음 태어난 날에 아이를 봤을 때 모두 사그라들었습니다.

이 아기와, 내 가족을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고 해야겠다는 생각만 가득했던 것 같습니다.

 

그 후로 4개월이 지났습니다.

그 때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부성애가 더욱 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대체로 아래와 같은 생각과 행동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1. 하루의 모든 시간을 아기를 위해 쓰는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예전엔 내 시간을 나를 위해 쓰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회사 일이나 가족의 일 때문에 예상치 못하게 나의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것에 대해서 불편한 감정이 크게 느껴졌습니다. 특히, 아무 것도 못하고 집에만 머물러 있는 것에 대해서 큰 스트레스를 받아하는 편이었는데요, 육아휴직을 하면서 하루종일 집 안에서 아내와 아기, 셋만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늘 즐겁고 편안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매일 조금씩 성장하는 아기를 보는 것에 대해서 큰 즐거움과 함께, 이런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마련된 육아휴직제도와 그걸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회사에게 감사한 마음도 가지고 있습니다.

 

2. 새벽에도 아기를 위해 번쩍 번쩍 눈이 떠지고 잘 일어납니다.

저는 새벽형 인간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습니다. 늦게까지 깨어 있는 것은 잘했지만, 새벽 일찍 일어나는 것은 정말 힘들어하고 잘 하지 못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육아 초반에는 새벽 2~3시의 마지막 수유를 제가 하고, 아침에 늦잠을 자는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어께와 손목을 다친 이후로는 아기를 수유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제가 첫 수유를 하고, 아기 트림을 시키고 다시 재운 후에 저도 수면을 취하고 있습니다. 분명 다른 일 때문에 새벽에 깨야 했다면, 그간의 제 성향 상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거나 힘들어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잠귀가 어두운 저 같은 사람도 새벽에 아기가 배가 고파서 칭얼대는 소리를 아내보다 먼저 듣고 벌떡 일어나서 분유를 타기 시작합니다. 막 자고 일어나서 칭얼거리는 아기가, 분유를 들고 온 저를 보고 씩 하고 웃어주는 기쁨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습니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을 정말 못하던 제가, 이제는 새벽 수유를 하면서 아기를 보고, 아기를 안는 시간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3. 육아로 인한 신체적 고통을 쉽게 이겨냅니다.

저희 아기는 꽤 큰 편입니다. 100일이 지났을 때 67cm, 7.5kg 정도가 되었습니다. 의사 선생님 말로는 상위 1%의 아기라고, 누가 이 아기를 100일된 아기로 보겠느냐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이렇게 우량우량한 아기는 가만히 안겨있지 않습니다. 제 몸을 마치 암벽처럼 여기고, 열심히 클라이밍을 해서 저를 타고 올라가려고 합니다. 작은 발가락과 발톱을 제 배에 단단히 박고, 손톱을 세운 손가락으로 가슴과 쇄골, 목덜미를 마구 꼬집습니다. 팔에 온 몸의 힘을 실어서 버둥버둥 거립니다. 아내는 이 행동들 때문에 회전근개를 다쳤습니다. 저 역시 힘들기는 하지만, 아기의 소화기관 건강을 위해서 최대한 오랫동안 안아주고 트림을 시켜줍니다. 아기를 내려놓고나면 팔에 감각이 없을 정도이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아기가 속 편하게 잠든 것을 보면 내가 해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제 현재의 삶은 아이를 위해서 맞춰져있고, 그렇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매일 아기와 함께하면서 이런 시간들을 보낼 수 있다는 것에서 정말 큰 보람과 감사함을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곧 육아휴직이 종료되면서 하루의 대부분을 아기와 떨어져서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벌써부터 절망스럽지만

그 부정적인 생각이 현재의 행복을 망치지 않도록, 매일 최선을 다해 아기와 시간을 보내고 사랑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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